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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오공) 해바라기에게 01

 

 

 

 

 태양이 지고 있다. 그저 아래로 덧없이 떨어지고 있다. 잡히지 아니하여 마음이 분하다. 그토록 찬란하던 금빛이 손 끝에 닿지도 않은 체 아스라이 죽어가는 것이 너무도 애잔하다. 잡히지않음이 이토록 먹먹한 것인 줄 알았다면 진즉에 손을 더해줬으리라.

 

 마음이 분하다.

 




 내 손을 잡아주지 않는 오공이란 생각해본 적 없다. 내가 부르면 오고 내가 시키면 하는 오공만 있다. 그것은 절대 이기심이 아니다.

 


 

 

 

 






"어제 저녁부터 오공이 방에서 나오지 않는데요."

 
 신문을 읽다가 괜히 목이 칼칼해져 맥주를 한 캔 따려고 손을 얹은 참이었다. 어쩐지 조용하더라. 가만 생각해보니 항상 주위에서 알짱대던 게 어제부터 안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별로. 시덥잖다. 빠르게 갈무리해버리고 캔을 마저 땄다.

 
"방금 가보니까 아예 방문까지 잠궈놨더라구요."

"원숭이한테 드디어 사춘기가…?"

 
 멍청한 바퀴벌레. 고작 생각해낸 게 그거? 벌레 수준이나, 원숭이 수준이나. 영양가 없는 오정의 말에 심기가 꿉꿉해져 들고 있던 캔을 들이켰다. 시원한 목넘김 덕에 언짢음은 금방 괜찮아졌다.  

 
"흥. 지가 왜."

 
 신문을 한 장 넘기며 나도 한마디했다.

 
"혹시 눈이 와서 그런거 아닐까요?"

"맞네. 그 녀석, 눈 오는 날을 무서워 했었지.
근데 그건 예전에 아싸리 극복한 거 아니었나?"

"후유증일까요."

 
 그럴싸하다. 눈이 오는 것도 어제 저녁 쯤 부터였으니까. 어쩌면 그 것이 이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래에도 눈내림은 여러번 겪었다. 오늘같은 반응이 아니라 오히려 물 만난 물고기마냥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녀서 붙잡아두는 데에 반나절이 걸렸을 정도면 말 다 했다.

 
"그럼 피곤한 건가? 최근에 제대로 쉰 적도 없고.
오공녀석, 하루종일 잠만 잔 적도 있었잖아."

"그 밥버러지 원숭이가 아무 것도 안 먹고 용케 버티는군."

"오정, 삼장. 그래도 좀. 걱정되네요."


 신문을 한 장 더 넘긴 참에 맥주도 한 모금 마셨다. 담배도 하나 피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캔을 내려놓았다. 한가치를 쟁여물고 라이터를 찾았다. 주머니를 연신 더듬대다가 문득. 어제 오공에게 맡겨버린 것이 떠올라 도중에 그만뒀다. 그러고보니 어제부터인가 총도 안 보이는 것이 라이터를 맡길 때 함께 맡긴 것이 분명하다. 총이든 담배든 오공에게 떠맡기는 버릇 고쳐야지, 안되겠다. 요 몇 달간 마을구경을 제대로 못한 탓에 노숙으로 심신이 지쳐있던 것이 화근이 되어 긴장이 풀렸던 참이라.


"하아.. 골이야."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신문을 접고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고 오정과 팔계가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오공에게 가는 거죠?"

"조련사가 드디어 움직이는구만."


 시끄러워. 닥쳐. 오공에게서 라이터나 찾아올 생각으로 둘을 무시하고 침실로 향했다. 창가 쪽을 지나다가 힐끗 밖을 바라보니 어제부터 쉬지않고 내려준 덕에 눈이 제법 쌓였다. 소복히 쌓인 눈은 그저 희다. 새하얗고 차다. 그 속에서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괜히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으슬으슬 추위를 느껴 자연스레 팔짱을 꼈다. 고개를 돌려 계단을 마저 올라가려는데 팔계가 나를 부른다.

 
"뭐야."

"이거 오공에게 갖다주세요.
어제부터 아무 것도 안 먹어서 배고파 할거에요."

"........ 귀찮게하네."


 오공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하나 가득 쌓아 올린 쟁반을 들이밀며 말하는 팔계를 좋게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내가 존나 나쁜 새끼이거나. 네가 오지랖이 존나 넓은 새끼이거나. 둘 중에 하나던가. 둘 다이던가. 뭐가 됐든 짜증이 나서 있는대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건 그냥 네가 갖다주라고 말했다가 오정까지 가세해서 잔소리를 해대는 통에 시끄러워서 냅다 받아들었다. 이 놈이고 저 놈이고 하여간 성가시게 하는 데에 뭐 있다니까. 성큼성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쟁반 위에 그릇들이 서로 부딧혀 요란하게 달그락거렸다. 그 사소한 소리조차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다.

 모처럼만의 휴식이라 혼자 편하게 쉬고 싶어서 내 앞으로 1인실을 먼저 잡았다. 그 셋이 마굿간에서 자던, 뒷간에서 자던 내 알바 아니지만은 빨간 물귀신이 저 혼자 호강하려 드네 마네 바락바락 따지고 들길래 각자 방 하나씩 잡아주는 걸로 주둥이를 막아버렸다. 뭐, 아무튼. 비싼 돈 들여 좋은 방 줬으면 제대로나 쉴 것이지. 오공, 이 새끼는 왜 또 지랄이야, 지랄이.


- 철컥철컥

 
 말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잠겨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나니 기분이 영 언짢다. 괜히 더 문고리만 부서져라 돌려보지만 잘 돌아가다 말고 컥컥대며 결국 열리지 않는 탓에 화까지 난다. 욕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온다.


'이노무 원숭이새끼가.'


 품을 뒤졌다. 총이 필요하다. 여태 자고 있는 거라면 총이나 몇 방 고약하게 먹여줄 심산이었는데. 더듬거리는 손이 할 일을 잃어버려 멈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총.


'원숭이새끼가 갖고 있잖아.'


 한숨이 나온다. 속절없이 문 앞에 쟁반을 내려 놓고 몸을 일으켰다. 분위기 상으로는 알아서 먹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야속하리만치 굳게 닫혀있는 방문을 미련하게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밥은 그렇다치고 총이랑 라이터는 좀 줬으면 좋겠다. 그대로 아랫층으로 가려하던 중에 혹시 깨어있을까.

 
"─오공?"

"........"

 
 저 원숭이가 사람 무안하게. 어? 왜? 같은 언제나의 멍청한 반응조차 없자 민망해졌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쪽팔려서 문을 박살내서라도 끌어냈겠지만 없으니 참는다. 또 귀찮고. 콧방귀를 뀌고 아쉼없이 뒤돌아 몇 걸음하자 다 죽어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삼장?"

 
 닫힌 문은 끝내 열리지 않은 채로 문 너머에서 들린다. 그 안에 오공이 문 밖의 나에게.


"이게 뭐냐, 원숭아?"

"...그냥 좀, ...

 ...쉬고 있어." 

"밥 먹어.  

 꼭 다 먹어라." 

 
 네 놈이 안 먹으면 녀석은 분명 '삼장, 억지로라도 먹이지 그러셨어요.' 라면서 기분 나쁜 눈으로 쳐다 보겠지. 날 아주 천하의 빌어먹을 놈으로 만들게 뻔하겠지. 하여간 대놓고 사람 곤란하게 만들어서 바라는 바, 다 이루는 몹쓸 놈이라니까.

 
"...괜찮아, 삼장. 괜찮아."

 
 차라리 신경질적으로 '상관하지마! 신경꺼!' 라던가,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라고 했으면 하고 바랐다. 진짜 사춘기인갑다하고 대충 넘어갔을 텐데.


 오행산 돌감옥. 녀석을 꺼내 준 것은 분명 나. 하지만 길은 오공의 것이다. 걸음 또한 오공의 몫이다. 듣고 보고 걸어. 자신의 눈으로, 귀로, 다리로. 그것을 이제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도 500년의 시간을 가늠하기는 어려우리라 단언한다. 100년조차 못 사는 인간인주제에. 이해한다, 내지 안다라고 말함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것은 얄팍한 거짓이고 지나친 농담이 되어 쉬이 듣다 사라질 것이다. 500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오래이고 또 어느 정도로 거대한 것인지. 상상으로 머릿 속에 간단히 떠올릴 수 있는 수준의 시간이 아니다.

 

 영원에 가깝다고 할 정도의 시간을, 영겁을. 외로움에 치를 떨다 결국 살아있음에 의문을 품는다. 그저 언젠가라는 막연한 믿음과 기다림에 지쳐, 닿지 않는 것을 위해 뻗었던 두 팔을 거두고 절망하며 고개를 내저었을지 모른다. 그 좁고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조차 속박당하는 양 팔다리의 절그럭거림을 어떻게 받아드렸을까. 그토록 삭막하고 매말라있는 곳에서 숨 쉬고 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떤 의미를 두어야 했을지.

 

 나도 어차피 하늘 아래 한낱 평범한 인간이 아닌가. 최고승이라 불려도 500년이란 세월을 짐작할 수 없어 그려내지 못한다. 그래서 오공의 심정을 헤아려주지 못할 뿐더러 이해하는 것은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난 아무 것도 아니다.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다. 
소중한 것이 부서질 때, 나의 무력함을 저주했다.

 
"어떻대냐, 스님!"

"시끄러워, 이 빨간바퀴야."

"오공은 어때요?"

 

 내가 1층 로비로 내려오자마자 오정과 팔계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었다. 어지간히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무 대꾸도 않고 대신 아까 내려놓았던 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 새를 못 참고 미적지근해진 술맛은 가히 끔찍하다 말할 수 있었다. 아직 캔 안은 비어있는 게 아니었지만 있는 힘껏 힘을 주니 구겨지며 내용물이 주체하지 못 하고 넘쳐올랐다. 짜증이 턱까지 솟아 목구멍 너머에서 울컥울컥 넘어올 듯, 말 듯. 어찌나 역겨운지.


"오공은 어떻냐니까, 삼장?"

"역시 그냥 우울해할 뿐인 거죠?"

"...낸들 아냐."

 
 그 말을 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정은 탁자에 올려놨던 담배를 물었고 나는 팔계에게서 캔맥주를 새로 꺼내 받았다. 오정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걸 보고 심하게 울렁거렸다. 뒷목을 주무르며 속을 달랬다. 사실 담배를 필 때 오공에게 맡긴 라이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으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눈이 그치면,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내게 달라 했다. 그리고 나는.


 시끄러운 것을 줏었다.

 

 

 



@Chwa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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